A Bin Koh

[평론]고아빈 개인전 아이보개 블루스
우리는 우주의 한 점이다. 그리고 하나의 점에서 차오른 이야기는 각자의 다른 우주를 만든다. 작은 우주들은 생성 후에 계속 부딪힌다. 한 번의 빅뱅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작은 충돌들 때문에 넓어진다. 바깥에서 오는 충격을 받아내고,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버텨내며 매일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때로는 쪼그라들고 때로는 활짝 열린다. 변화, 변혁, 혁명. 무엇이라 부르든 모든 우주는 지금도 움직인다. 고아빈이라는 우주 역시 움직임이 특별한 확장으로 연결되는 순간을 맞이했었다. 그 순간은 까치가 물어다 준 것인데, 스르렁 스르렁 까치가 전한 순간의 알맹이를 켜보니, 그 안에 자유가 있었다. 그는 이 자유를 받아 들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땅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사랑 안에서 욕망과 이성,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 사회 규율과 개인의 행동, 전통과 현대성 등 온갖 것을 나누고 대치시켜 보던 그 자리, 다른 것과 옳은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멀어지고자 했다. 이 거리 두기 끝에, 그는 새로운 탐구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세상을 이루는 것들이 교차하는 경계 지점, 그리고 균형의 영역으로. 이번 전시 《아이보개 Blue(s)》는 고아빈이 잠시간의 쉼 끝에 다시 시작하는 예술가로서 균형을 찾아가는 행로의 출발선에 있다. 이 길에 들어서기 전에 그는 한국 채색화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쌓기와 채움의 방식으로 장면을 만들어 왔다. 동서양의 고전 신화나 설화에서 가져온 사랑의 면면을 대형 화면에 빼곡히 배치하고, 이를 중색 기법으로 오랜 시간 거듭 쌓아 올려 시각적으로나 구성적으로 무게감 있는 서사를 구성했다. 첫 개인전 《雅彬_好色奇行 아빈_호색기행》(2007, 갤러리 킹, 서울)을 시작으로 개인전 《성과 사랑의 작동방식: 즐거운 나의 정원》(2021, 갤러리 도스, 서울)에 이르기까지, 대칭 등의 안정적인 구도 속에서 사람, 요괴, 천사, 신 등을 아우르는 얼굴 가진 존재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오묘하고 환상적인 풍경이 특징적인 작품을 보여왔다. 그러나 일종의 종교화적인 양식으로 초월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기에도 그가 붙잡고 있었던 것은 늘 현실의 문제였다. 즐거움, 충동, 욕망, 쾌락 마침내 사랑…. 무어라 달리 부를지라도 그것은 한 개인의 삶에서 출발하여 삶으로 되돌아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지나 되돌아온 지금, 그는 받아들임을 연습하고 있다. 그의 강점인 숙련된 전통 채색 기법과 정치한 묘사력을 유지하되, 감정 담긴 얼굴과 구체적인 사건을 없앤 너그러운 바탕을 마련한다. 이는 나뉘는 것(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어우러지며 함께 머무는 공간이 된다. 이 공간에서 수용과 연결이 이루어진다. 〈아이보개 Blues〉(2023) 시리즈에서 장황의 요소를 그림 안으로 들여오는가 하면, 〈밸런스 게임〉(2024)과 〈달돚이〉(2025)에서는 자수 공예·드로잉·전통 회화의 공존을, 〈휘영-청(靑)〉(2025)으로 도자 공예와 전통 회화의 융화를 시도한다. 한편, 쌍을 이루는 〈정중동(靜中動)〉(2025)과 〈동중정(動中靜)〉(2025)은 까치와 달항아리라는 모티프가 물을 만나 환영과 교차-중첩하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이분법적 앎과 확신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받아들임의 태도는 비단 습관처럼 고정된 회화에서 벗어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가족의 탄생〉(2025)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야 마는 가족의 힘을 탐스러운 세 개의 사과가 육중한 돌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에 비유한 작업으로, 삶에 닥치는 새로운 국면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시를 열기 직전까지 고아빈은 〈mama Maria〉 연작(2023~2025)을 그렸다. 그는 몇 해 전 모든 것을 품어내는 존재, 기꺼이 희생을 감내하고 자애롭게 미소 짓는 어머니인 마리아를 얼굴 대신 뒷모습으로 그렸고, 여기에 아이보개를 겹쳐 보았다. 아이를 돌보는 아이. 서툴고 어렵지만, 비틀거리더라도 다시 중심 잡고 균형을 찾아 걸어가는 아이보개. 연작에서 마지막으로 그려진 마리아-엄마는 이제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 갔다. 작업이 삶과 예술에 존재하는 온갖 경계를 조화로운 관계가 생겨나는 유연한 지점으로 옮겨 가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우주를 넓혀 가는 그의 움직임이 마침내 빛으로, 화합으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보고 싶다. 임나래(독립 큐레이터)

가벼운 하강을 위한 육중한 날갯짓
쾌락을 통한 강한 쾌감은 대개 배덕을 유발한다. 유흥을 갖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행위가 필요하지만 소모하는 즐거움은 빠르고 간편하다. 쾌를 탐하는 행동은 어떠한 형태이든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에 시작 단계에서는 약간의 주저와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는 걸음을 느리게 하는 족쇄가 아닌 달콤한 추진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연료를 채운다. 그 다음 단계를 향해 박차고 나가려면 확신 가득한 사랑처럼 대단한 힘이 필요할 수 있지만 작은 기대감이나 눈먼 용기로 충분하다. 고아빈은 지역과 문화를 막론하고 주류 종교 교리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관계에 대한 애착과 공존하는 성적 쾌락에 대한 억압에서 지배의 논리와 작은 개인의 충돌을 바라본다. 성욕과 생식기능은 선택의 여지없이 모든 존재에게 부여된 힘이다. 하지만 그 자체를 일생의 목표로 살아가며 자연을 채우는 다른 생물과 다르게 인간은 스스로 능력을 억압하는 규칙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보상을 기대한다. 고아빈의 작품 역시 기존에 존재하는 종교화에 등장하는 양식이라는 시각적 규칙을 치밀하게 지키며 그 세계 안에 등장하는 사물의 상황과 행위를 변형하여 일탈을 보여준다. 연꽃잎을 포함하여 작품 중앙부에 거대하게 등장하는 짐승의 피부를 이루고 있는 비늘처럼 복잡하게 얽힌 그물형상은 틈이 많음에도 헤어 나오기 힘든 짙은 욕망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듯 그려져 있다. 대지의 피부처럼 들판을 뒤덮고 있는 꽃잎은 끝이 구부러진 형상으로 끌 수 없는 화염의 모습인 동시에 거세게 굽이치는 파도의 모습이기도 하다. 바람에 세차게 흘러가는 구름의 형상은 생물들이 뒹굴고 있는 지상은 물론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고 있다. 새하얀 물방울과 공기는 티 없이 깨끗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절정에 달해 뿜어져 나온 인간의 체액을 연상케 한다. 그 굴곡 사이에서 나체로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은 선악과를 먹고 수치를 깨우친 현자의 표정인 동시에 계산이 관여 할 수 없는 원초적인 쾌감에 젖은 눅진한 만족이 새겨져 있다. 삼면화의 양식을 빌린 작품의 중앙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모습에서는 불화의 모습도 떠오른다. 구름이 지니고 있는 복잡한 굴곡의 형태는 쾌락의 마찰이 만들어낸 하얀 거품처럼 증식하며 인물에 불꽃처럼 엉겨붙어있다. 핏빛으로 물든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가스를 뿜어내고 있는 화산은 성서에 등장하는 재앙의 모습인 동시에 분출이라는 키워드로 작품 전반에 걸친 욕망이라는 이야기를 더욱 치밀하게 뒷받침한다. 들판을 구르고 내달리는 변형된 신체들의 기괴한 행위는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되는 지옥의 모습인 동시에 업보에 짓이겨지고 있는 염라의 세계이다. 고아빈이 그려낸 쾌락의 정원에서는 규칙과 계급에 묶이지 않은 순진무구한 존재들이 거리낌 없이 서로를 탐하며 입 맞추고 있다. 악의 없이 베푼 본능적인 애착에는 의도와 관계없이 생겨나는 상처로 인해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쾌감과 고통이 공존한다.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된 각기 다른 두 가지 색을 지닌 액체가 뒤섞이며 동굴에 흐르는 습기처럼 웅덩이와 종유석을 형성한다. 생명의 힘이 넘쳐흐르는 무아지경의 광경이지만 피비린내 자욱한 전쟁터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치현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보편적인 노래, 사랑의 일상성을 그리다
사랑은 인류보편적인 감정이다.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음악, 영화, 문학, 미술 등 예술 전방위에서 표현되고 다뤄지는 창작의 원천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떠올리며 설렘 혹은 안타까움이라는 극명하게 다른,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감정의 영역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두 글자 ‘사랑’ 은 기실 엄청나게 미세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화가 고아빈이 추구해온,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가 바로 그 사랑이다. 작가는 그 동안 신화나 설화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고귀하고 신성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의 특별함을 캔버스에 옮겨왔다. 춘화의 형식을 빌려 성의 이중적 속성을 풍자하는 초기작품(혼성동자의 기원 시리즈, 2008)을 시작으로, 새로울 것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한국화라는 장르적 성격, 전통적 소재와 결합시켜 재구성하는 독특한 작업을 해왔다. 강렬한 색상과 구도, 작가의 실험적 시도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용설화를 모티브로 하는 A Tale of Dragon(2008~2012) 시리즈는 전작을 바탕으로 고아빈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기반이 됐다. 용의 형상과 연꽃, 백로, 청개구리 등 상징적 요소의 은유를 통해 앞선 작품들과는 상반된 표현방식을 선보이며 사랑이라는 주제를 간접적으로 담아냈다. 세밀하면서도 절제있는 필력은 작가의 노련한 경륜과 완성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화면 안 꿈틀거리는 힘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장관을 구현했다. 처용설화를 통해 순수한 사랑, 질투가 아닌 관용을 경험하고 그렇게 사랑의 대범한 얼굴을 만나 본격적인 사랑의 탐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The Gate of Love(2013~2014) 시리즈는 사랑의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을 장대한 스케일과 풍부한 화면 구성으로 흥미롭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Hieronymus Bosch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천상의 세계를 상상케 하는 다른 매력이 있다. 사랑의 신비와 그 성스러운 순간을 사랑의 생성과 소멸이 순환되는 서사로 표현하며 종교화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사랑 숭상의 비등점을 찍고 다시금 일상의 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The Gate of Love는 사랑의 일상성을 이야기하는 신작과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사랑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판타지를 깨고 허물어가면서, 우러러 보는 사랑이 아닌 우리 곁에 있는 사랑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렇게 찾은 사랑을 일상에서 조우하는 환상의 순간으로 표현한다. 신작 시리즈는 형식적인 면에서 고전 명작을 패러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정 명화를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명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요소를 차용하거나 대체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의 ‘The Kiss 키스(1907~1908)’, Jan Van Eyck 얀 반 에이크의‘The Arnolfini Portrait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 John Everett Millais 존 에버렛 밀레이스의‘Ophelia 오필리아(1852)’ 등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작 속에 주인공 남녀가 등장한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시작하는 사랑 (Adam with Eve, 2014),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에서 느끼는 사랑의 절정(Kiss Kiss Kiss, 2015), 연인들이 보내는 평온한 한 때 (Happy Afternoon, 2014), 실연의 상처를 보듬는 여인의 애틋함(Ophelia’s Bathtub, 2015) 등 삶에서 겪게 되는 사랑의 단상을 담고 있다. 작가는 명화라는 가장 이상적인 배경 안에 지속적으로 ‘열매’를 그려 넣으며 사랑의 순수성을 흩뿌려놓는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순간을 누리는 평범한 연인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사랑의 가치가 됐다. 사랑의 서약을 그린 The Wedding These days(2015)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온도 차이, 냉정과 열정 사이에 놓인 사랑의 순수성을 중의적으로 표현하며 그 괴리감을 부각시킨다. 비현실적 풍경 안에 담긴 일상의 판타지를 통해 소소한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산과 같았던 사랑이, 청춘의 언덕을 넘어서면서 저 멀리 높은 산만이 아니라 아파트 화단에 핀 작은 꽃 한 송이에서도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기쁨이 됐다. 작가는 개인적 삶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느꼈던 사랑과 현실의 벽이 사랑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과 작업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귀띔한다.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주변인들과 나누는 마음의 행복을 아는 것은 신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신념과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자, 시간의 성숙이 가져다준 삶의 깨달음일 것이다. 이 진아 (큐레이터)

신 춘화(新 春畵)의 기억 만들기
요즘 전시장에서 만나는 한국화 중에는 옛 그림 구조와 형식을 차용하여 이를 작가 자신이 경험한 소재나 내용들과 병치 또는 변화 시킨 작품들이 많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시도가 눈에 띠는데 아마도 ‘전통의 재발견’이라는 문맥이 작가의 주관적 경험을 최소화하면서 작가와 관객이 동일한 선상에서 소통이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고아빈의 작품도 이런 시각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빠짐없이 춘화(春畵)를 화면에 배치한 고아빈의 작품은 옛 춘화를 오늘의 기억으로 재생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춘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그림으로 대체로 저속하고 거칠고 직설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고아빈의 작품은 조작된 이미지로 재구성한 춘화로 음탕하기보다 은밀하며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느낌이다. 내용으로 보자면 옛 춘화 형식을 차용하여 오늘날의 다양한 인종 간 성적 체위를 직설적으로 풍자한다. 일견 관음증의 재미를 안겨주지만 작가는 성(性)의 이중적인 속성 즉 가장 숭고하면서도 가장 추악하다는 일반적 상식에 대해 관조하면서 동시에 현재화 된 춘화도에서 새로운 매력을 찾는데 보다 더 관심을 보인다. “포르노 영상물에 환호하고 사진의 사실성에 침을 삼키는 요즘, 고작 벗은 몸에 성행위를 하고 있는 그림 따위가 어떻게 에로스를 충족시켜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작가는 자문(自問)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춘화도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역설적인 접근인 셈이다. 역설은 다시 이중성으로 포장되고, 이를 눈치 챈 관객은 긴장관계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가 장치해 놓은 이중성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작품 는 민화풍의 연화도를 확장시켜 놓은 배경 위에 피부색이 다른 사람끼리 벌이는 성적 판타지를 담았다. 연꽃은 민화에서 다산을 상징하지만 불가(佛家)에서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연꽃과 춘화가 전혀 다른 만남의 관계를 형성한다. 춘화의 구성도 개인적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가장 은밀하고 개인적이어야 할 섹스가 엉뚱하게도 글로벌 섹스로 확대 재생산하여 관객에게 충격을 가한다. 순간 관객은 무거운 역사와 습속에 억눌려 왔던 사고의 전복을 시도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섹스를 운우(雲雨)로 표현했다. 섹스가 음양 조화라는 화해의 현상으로 파악했다는 증거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으로 삼아 이 둘의 합일에 이르는 과정을 매개하는 구름과 비는 양자의 중간에 위치하여 상호를 매개하고 있고, 이는 인간의 섹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음양의 조화로움은 한자문화권의 예술이 추구해온 이상이자 삶의 원리였다. 그런데 작가는 이 근엄하게 조화를 이룬 세계를 가볍게 비튼다. 작품 은 그러한 작가의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장지 위 핑크색이 눈부시다. 간이 꽃밭을 만들어 그 위에 펼쳐지는 핑크빛 정사. 여성은 색깔부터 강한 톤이고 자세도 능동적이다. 이에 반해 남성은 반대로 연약한 존재로 그려졌다. 라는 글귀가 화면 중앙에 전서체로 자리 잡았다. 이 대목이 흥미롭다. 춘화와 대척점에 있는 문인화의 화제(畵題) 형식을 비틀어 차용하는 재치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민화의 책거리 구도를 전체에 적용한 방식도 눈길을 끈다. 선반처럼 배치한 책거리 공간에는 있어야 할 화병이나 책 대신에 춘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춘화 속 인간들을 의도적으로 박제화 하고 희화(戱畵)시켜 종래 춘화가 가진 환타지를 해체시켜 나간다. 이는 결국 작가가 춘화가 장롱속의 빨간책으로 남기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해석할 수가 있지 않을까. 고아빈의 작품은 은밀히 보아오던 옛 춘화를 일종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아이콘으로 사용하여 젊고 가벼운 오늘이 미술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믿어진다. (송인상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큐레이터)